[1일1식 시즌3 D+14] 2/16 : 칭다오 모녀여행, 첫식사는 피자헛!

2015. 2. 20. 03:51Health/1일1식 시즌3 (~150326)

시작하기 전에.

이번 여행이 시작되는 16일부터 구정인 19일까지는 1일1식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기로 했다. 특히나 여행일정 중에는 3식에 대한 깨알같은 기록이 있으니, 감안하고 보시길. (사실 별도로 여행폴더를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무너지고 깨지는 와중에도 난 1일1식 진행 중임을 잊지 않기 위해, '굳이' 1일1식 폴더에 글을 쓰기로 한다)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 난 꽤 오래 중국어를 공부했음에도 대륙으로의 여행은 처음인지라 본토에서의 중국어 소통 정도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거의 안 통한다고 봐야하는 중국에서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칭다오 지방 사투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내심 걱정이었다. 그리고 꽤 오랜만에 하는 완전히 새로운 장소로의 여행이라는 점도 내겐 의미가 컸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2010년에 세부를 다녀온 이후로는 대부분 이미 다녀왔던 곳(이라 쓰고 홍콩이라 읽는다)을 다시 찾는 여행만 했었다. 이제 홍콩은 여행지로서의 설레임보다는 그리운 곳을 찾아가는 느낌이 강해서인지, 이렇게 0부터 시작하는 여행이 꽤 낯설고 새롭다.


전날 남동생부부가 찾아와 저녁을 먹고간 데다, 엄마가 즐겨보시는 주말 드라마까지 모두 섭렵하는 바람에 짐을 싸는 시간이 확 늦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현지정보만 찾아보고 있다가 부랴부랴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을 백업한 뒤 메모리를 리셋하고, 짐을 싸고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이다. 그런데 우리 비행기는 8시 20분에 이륙하는 제주항공.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2시. 아, 뭔가 망했다 싶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나처럼 월화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느긋하게 출발했는데도 공항 출발층에 도착한 순간 뭔가 되게 빠듯하겠구나 싶은 느낌이 빡 왔다. 작년 5월 연휴에 겪었던 아수라장을 고스란히 다시 겪는 기분이다. 여행을 가는게 아니라 피난을 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집에서 새벽 4시반에 나왔는데, 보딩패스 받고 이미그레이션 지나고보니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배고파서 속이 뒤집힌다는 엄마를 모시고 제일 빨리 되는 산채비빔밥을 꾸역꾸역 먹고서 비행기에 탑승. 둘 다 피곤했는지 눈을 감았다 떴더니 어느새 칭다오 도착이다.




칭다오 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모두 취항하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는 규모가 큰 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쩐지 시외버스터미널같다. 김포공항 내지는 제주공항의 느낌이 물씬. 짐을 찾고서 국제선에서 국내선쪽으로 넘어와 버스를 타고 호텔로 출발했다. 사실 호텔 예약할때만해도 칭다오에 대한 정보가 완전 없는 상황이라, 그저 좋은 호텔이니 위치도 시설도 다 좋겠구나 싶어서 샹그릴라를 예약했는데 (여기엔 같은 예산으로 다른 도시의 샹그릴라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계산도 작용을 했다) 도착해서 보니 이거 뭔가 영 쎄하다. 공항버스를 탄 모든 사람들이 까르푸 정류장에서 우르르 내리는데, 어딜봐도 여기가 중심가스럽긴 하다. 우리는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는데, 한 정거장이 꽤 긴 관계로 동네 분위기가 좀 달라진다. 이 동네는.. 음.. 분위기가 여의도스럽다. 이 얘기인 즉슨, 이 동네는 상업지구인 동시에 노는 날엔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곳이라는 의미. 호텔까지 걸으며 주변을 살피는데 이건 뭐 보면 볼 수록 쎄하다. 여의도에 IFC 들어오기 전엔 주말에 갈 데가 없었던 것처럼, 이 동네가 딱 그렇더라. 주변이 온통 은행들이고 뭔가 쇼핑몰스러운건 약에 찾을래도 없는.. 그제야 칭다오 공부를 미리미리 좀 해둘걸 후회가 되더라.


하지만 호텔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체크인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오전에 갔는데도 흔쾌히 방을 내줬는데, 심지어 예약 시에 남겼던 코멘트들도 모두 지켜주었다. 이런 코멘트들은 체크인할 때 다시 한 번 언급하지 않으면 대략 쌩까는 경우가 많은데, 얼리 체크인하는 처지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깨알같이 모든 요구사항이 지켜졌다. 특히 담배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방이라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대륙답게 방도 큼직한게 마음에 들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서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아침을 부실하기 드신 엄마가 배가 고프시단다. 마침 호텔 근처에 베이징덕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어서 거길 가자고 하고 길을 나섰는데, 신호등을 건너다보니 웬 피자헛이 보이길래 장난삼아 "피자 드실래요?"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왠걸, 반색을 하며 좋다고 하신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엄마는 내심 베이징덕을 먹는게 걱정스러웠었나보다. 중국에서의 첫 식사가 피자헛이라는게 좀 황당했지만 어쩌겠나. 드시고 싶다는데. 

우리나라 피자헛과는 비교가 안되게 고급진 분위기의 피자헛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살펴본다. 메뉴도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되게 다양하다. 대신에 얇은 도우가 없고, 모두 두꺼운 미국식 피자만 있었다. 옵션이 너무 많아도 고민이라 한참을 메뉴판을 뒤적거리다가 베이직한 메뉴가 최고라며 슈퍼슈프림 피자와 미트소스 라자냐를 주문해서 먹었다. 피자에서 중국스러운 향이 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먹던 그 피자와 같은 맛이다. 덕분에 엄마와 함깨 피자 한 판을 깔끔히 클리어했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데이터로밍 대신에 중국 현지 유심을 써보겠다며 이통사를 찾는데, 길을 물어도 대부분 모른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중국 유심을 써보겠다는 일념으로 공항에서부터 아무리 궁금한게 있어도 휴대폰의 비행기모드를 풀지 않았건만, 그냥 다 때려치우고 데이터로밍을 해버릴까 하는 순간에 경찰이 보이기에 길을 물었더니 답을 알려준다. 근데 이 경찰아저씨야, 길을 알려줄거면 멀다고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랬니. 너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서 조금만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걸어도 걸어도 이통사가 안나와서 나는 너님이 뻥 친 줄 알았단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유심은 샀다.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았는데, 이건 뭐 대기인원만 20명 가까이 된다. 여행지에서 시간은 금이건만. 결국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스마일마크 배지를 달고 입구에 서 있는 남자직원에게 가서 "나 외국인인데, 유심칩을 좀 사야겠다"고 했더니 이 총각이 모든걸 친절하게 다 해결해주었다. 유심칩까지 내 아이폰 슬롯에 맞게 잘라서 넣어주고는, 본인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잘 가는지 테스트까지 해주더라. 여행 다니면서 유심칩 여러번 바꿔봤지만, 이렇게까지 해주는 경우는 또 처음 본다. 아마도 내가 찾아간 곳이 직영점인 듯 한데, 내국인들이나 가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통사 직영점에 왠 외국인이 찾아와서는 중국어로 유심칩을 내놓으라고 하니 이 친구도 내심 신기했던 모양. 공항에서 유심칩을 잘 못 사면, 하루도 안 가 데이터가 모두 소진되어서 비싼 돈 내고 다시 유심칩을 사야하는 신종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굳이 시내로 간 것이었는데 덕분에 극진한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덤으로 이 총각이랑 중국어 워밍업을 제대로 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한 숨 돌린 뒤에 버스를 타고 맥주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택시비가 싸고 기동력이 좋으니 택시를 타자고 해도 엄마는 계속 버스를 타자고 우기신다. 그리하여 결국 버스를 탔으나, 덕분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렸고.. 다시 물어물어 다리가 빠지게 걸어서 맥주박물관 앞에 도착했더니 박물관 폐장시간이란다. 아니 무슨 박물관을 4시30분에 닫냐고. 결국 맥주박물관은 가보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엄마에게 택시가 진리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덕분에 이후 일정은 모두 택시로 소화했다. 택시가 너무 후줄근하고 운전이 와일드한 편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매우 만족스러웠다. 시내에선 아무리 멀리가도 한국돈 4000원을 넘지 않았으니, 칭다오에 여행을 갈 계획이라면 그냥 택시를 타시라 권하고 싶다. 





맥주박물관에서 허탕을 치고나니 만사가 귀찮아진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점심에 못먹은 베이징덕을 먹으러 '전취덕'으로 갔다. 한마리는 너무 많아서 오리 반마리와 바지락볶음, 채소볶음을 주문했다. 주방장이 솜씨좋게 발라주는 오리살을 밀전병에 싸먹으며, 칭다오의 특산품이라는 바지락볶음을 먹으니 하루동안 쌓인 피로가 스르륵 녹는 기분이다. 바지락볶음엔 아무래도 밥이 필요할 것 같아서 볶음밥이 있냐고 물었더니 양주볶음밥이 있단다. 그래서 볶음밥까지 추가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채소볶음도 양주볶음밥도 당최 나오질 않는다. 종업원에게 확인해보니 채소볶음은 주문이 되지 않았고, 볶음밥은 지금 만드는 중이란다. 그래서 볶음밥이 나오면 베이징덕에 세트로 나오는 탕을 곁들여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이놈의 볶음밥이 영 나오질 않는다. 슬슬 머리에서 김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종업원을 잡아다가 "아직 안 만들었으면 취소해달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간 이 종업원이 한참 있다가 볶음밥을 들고 나온다. 사람 놀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안 먹겠으니 취소해달라, 아직 오리탕도 안나왔는데 이게 대체 뭐냐고 따졌더니 대뜸 오리탕을 가져다주고는 "할 말이 있으면 매니저한테 말하라"며 휙 가버린다. 너무 화가 나서 식식대고 있는데 매니저가 와선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여러번 물었을 때마다 만드는 중이라고 해놓고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놓곤 취소해달라고 하니 그제야 음식이 나왔다, 오리탕도 내가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나오더라, 지금 놀리는거냐. 라는 말을 조리있게 하고 싶었지만.. 화가 난 상태인데다 중국어 실력이 능수능란하게 클레임을 할 수준이 못되다보니 너무 흥분해버리고 말았다. (에잇, 흥분하면 지는건데)

결국 음식은 모두 취소하고, 먹은 음식만큼만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우리에게 사과도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익히 알지만, 서비스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저러니 굉장히 기분이 상했다. 결국 터덜터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산 칭다오 맥주와 매콤한 땅콩안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제대로 한 일이라곤 호텔 체크인과 유심칩 구입 밖에 없는 첫날이었지만, 새벽부터 종종거리고 2만보가 넘게 걸었더니 어깨에 곰 두마리가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욕조에 좋아하는 딸기향 바스를 듬뿍 풀어서 욕조목욕을 한 뒤에 침대에 누웠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다. 머리도 채 말리지 못하고 잠든 칭다오의 첫 밤.



-아침 : 산채비빔밥, 아메리카노

-점심 : 피자, 라자냐, 콜라

-간식 : 아이스라테

-저녁 : 베이징덕, 바지락볶음

-후식 : 칭다오맥주, 땅콩


-걷기 : 총 25,511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