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식 시즌2 D+29] 1/10 : 린다 매카트니, 그리고 킹키부츠

2015. 1. 11. 19:44Health/1일1식 시즌2 (~150202)

린다 매카트니전이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 소셜커머스에서 티켓을 판매하기에 구매했었다. 누구와 함께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티케팅부터 해두었는데, 돌아다니는 사진들을 보니 엄마와 가는게 좋겠더라. 티켓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마침 스터디 일정도 금요일로 당겨지고 해서 오늘을 디데이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또 마침 뮤지컬 킹키부츠 티켓도 생겼다. 예전에는 A석이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R석이다. 지난번에 엄마나 너무 흥겹게 보시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보시겠냐고 물었더니 굉장히 반갑게 그러자고 하신다. 그리하여 오늘은 본의 아니게 문화예술의 날이 되어버렸다. 경복궁 근처에서 짜장면을 먹고, 린다 매카트니를 본 다음, 통인시장을 한바퀴 돌고나서 명동으로 이동해서 샌드위치를 먹고 공연을 보러가는 일정을 짰다.


어제 스터디를 마치고 돌아와 이런저런 책을 뒤적거리다 잤더니 꽤 늦게까지 잠을 잤다. 부시부시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 집에서 나와 곧장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삼청동 현대미술관 좀 지나서 있는 짜장면 집 "연춘관"이었는데, 그토록 마르고 닳도록 다녔던 길에 이렇게 오래된 중국집이 있었을 줄이야. 추운 겨울날 짱박혀서 탕수육 덴뿌라를 주문해서 먹으면 딱일 듯한 방과 홀의 구조가 영락없는 어린시절의 그것이다. 손으로 쓴 오래된 메뉴판도 정겹다. 이런 집에서는 16각형 모양의 옥색사기컵에 펄펄 끓는 뜨거운 엽차를 내와야 제격인데, 종이컵에 생수를 주는게 홀랑 깨기는 했지만 짜장면은 진짜 옛날 짜장면이더라. 쫄깃한 면발에 자극적이지 않고 구수한 소스. 딱 베이직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짜장면.

엄마와 둘이서 짜장면 한그릇씩을 클리어하고나서 대림미술관으로 갔는데.. 어머.. 줄이.. 대박 길다. 그 와중에 대림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즉시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카페에 가서도 줄을 선 끝에) 커피를 주문하면서 물어보니, 소셜커머스에서 산 티켓은 일반 티켓으로 바꿔온 뒤에 도장을 받아야 즉시입장이 가능한다. 뭐야.. 나, 바보된거니. 티켓을 받아와서 영수증 확인해서 도장 받으면 안되냐고 했더니, 그건 또 안된단다. 결국 옥신각신하다가 짜증이 나서 커피 주문은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줄을 섰다. 근데, 알고보니 커피 주문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건데 종업원이 잘 못 알려준 거였더라. 이중삼중으로 짜증이 업...

하지만 사진전은 참 좋았다. 2층에 전시되던 가족사진들이 제일 좋았는데, 한 가족의 연대기를 보는 기분이라 따뜻하고도 정겨웠다. 그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폴 매카트니도 처음 보았고 아이들의 자라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은 참 좋은 일이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똥싸는 모습까지도 사진으로 남겨둔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는 대목이다.



예정대로 사진전에 통인시장까지 돌고서 명동에 갔는데, 우리가 가려던 샌드위치집은 중국인들로 점령당한 상태였다. 내가 주문하러 간 사이에 엄마가 자리를 맡고 계셨는데, 중국인들이 막무가내로 밀고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더라. 마침 재료들이 다 동난 상황이라 주문도 못하고 돌아서는 와중이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그 중국인들에게 일어서라고 한마디 했을 듯.

어쨌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저녁은 롯데백화점 12층의 비빔밥 집에서 먹었는데, 그곳에서도 한국인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다. 마치 중국으로 여행와서 한국음식점에 밥 먹으러 온 기분이었다. 내내 엄마와 "명동으로 중국여행 왔다"며 키득거렸지만, 경제논리에 의해 무질서한 무국적 공간이 되어가는 명동이 좀 안타깝다.


그리고 킹키부츠. 오늘의 캐스팅은 지현우, 강홍석 라인이다. 지난번에 김무열, 오만석 팀의 공연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어느 배우를 택할까 매우 신중하게 살펴봤는데.. 사실 내가 염두에 두었던 캐스팅은 '윤소호, 강홍석'이었지만, 둘 다 티켓파워가 강하지 못한 배우들이다보니 이 구성은 평일 낮 공연에나 드물게 찾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 오만석이 롤라를 참 잘 소화했다는 생각이었는데, 강홍석의 롤라는 오만석과는 정반대였다. 오만석이 섬세하게 드랙퀸의 감성과 특징을 연기해냈다면, 강홍석의 롤라는 무척 파워풀하고 무엇보다 가창력이 굉장하다. 각자의 장단점이 확실한 캐스팅이라 가능하다면 두 배우의 공연을 모두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정말이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지현우는 발음이 어딘가 모르게 노홍철을 연상케한다. 보이스 자체가 킹키부츠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끌어간다. 또 무대를 즐긴다는 느낌이 물씬 들어서 보기 좋더라.


오후 12시 좀 넘어서 집에서 나왔는데, 집에 도착해보니 밤 11시가 넘었더라. 한나절 내내 서울을 돌아다니며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본 즐거운 하루였다. 이렇게 찐하게 서비스했으니, 한동안은 엄마 기분이 좀 좋아지려나.



짜장면 1인분, 아이스라테, 호떡 1/2개, 돌솥비빔밥 3/4인분

총 12,636걸음 / 아침 발목펌핑 15분 + 저녁 발끝 부딪히기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