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의 책 B+8]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2015. 4. 13. 16:35Self-Improvement/100권의 책



나는 늘 외국어에 목 마른 사람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고, 중국어를 잘하고 싶고, 광동어를 잘하고 싶다. "외국어를 할 줄 안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름 관대한 기준으로 보자면 나는 3개국어를 할 줄 알고 지금 네 번째 언어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 스스로와의 타협없이' 하고싶다는, 나 스스로의 기준으로 놓고보면 제대로 할 줄 아는 언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외국어가 늘 일상의 화두 중 하나이기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낸 순간 외면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설은 주인공이 왜 외국어를 배우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외국어 고등학교의 불어반에 입학한 주인공의 3년간의 고교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학번으로 치면 92학번들의 이야기라.. 학력고사 이야기만 빼면 96학번인 내가 읽어도 크게 괴리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 보다는, 반쯤은 내 고교시절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잊고 있었던 추억이 꽤 많았더라.
봄이면 '통일동산'이라 불리던 학교 뒷산을 온통 뒤덮어버리던 벚꽃들, 교련 실습시험을 앞둔 어느 점심시간에 교내방송에서 흐르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짝의 머리와 어깨에 붕대를 감는 연습을 했던 일, 주번을 맡게되면 교실 뒤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다가 외발수레에 실어서 소각장에 가져다 태웠던 일,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사각사각 아껴서 베어 먹었던 꽝꽝 얼린 오렌지맛 삼강사와, 손가락에 피가 맺히도록 튕겨댔던 가야금과,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학교 앞에서 나와 친구들을 태워갔던 독서실 봉고차... 그리고 잊고 있었던 친구들의 얼굴....
책을 다 읽고나니 지나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밤새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워졌다. 그리고 한가지 깨달았다. 그 당시에도 나는 외국어에 목말라하던 아이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당시엔 어른이 된 나는 외국어에 능통한 인간이 되어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을.
세월이 이토록 흘렀음에도 변함이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에는, 너무 서글픈 공통점이다. 어쩌면 나는 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참 갈수록 서글퍼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