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제로] 나는 어떻게 빚을 지게 되었나.

2014. 11. 14. 01:25Wealth/빚제로 프로젝트

이 모든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999년,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 가족은 집을 잃었다. 다섯식구가 함께 살만한 집을 얻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우리 가족은 둘로 나뉘어서 지내게 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나이도 어렸고 철도 없어서 그저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한 시간도 잠시, 아버지가 설상가상으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아침에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그 날 저녁부터 몸의 반쪽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간병인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누군가는 아버지의 옆에 있어야 했고, 그 뒤로 1년 넘도록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다. 낮에는 내가, 밤에는 엄마가 번갈아가며 아버지의 옆을 지켰다. 엄마가 집에서 주무시는 날이면, 나는 병원의 간이침대에 누워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곤 했다. HSK 문제집을 꽤 열심히 풀었더랬는데, 시험을 보고 싶어도 시험응시료가 없어서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오랜 병원생활을 엄청난 빚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나, 남동생이 의기투합해서 열심히 벌고 모은 덕에 2-3년 만에 그 빚은 모두 갚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꽤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게 되긴 했지만, 내 스스로 컨트롤 가능한 정도였고.. 한때 월급체불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과거를 씻어내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쟁이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 하지 않던 음주가무의 세계에 깊이 빠졌던 시절이기도 하다. 서른 넘어 뒤늦게 술마시는 재미에 빠져 날새는 줄 몰랐다. 잔뜩 퍼마시고 회사 앞 호텔방을 잡아 잠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불만은 있었으니, 바로 내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쫓기듯 나왔던 옛 집에 대한 미련도 굉장했고, 이사걱정 하지 않고 뿌리내리고 살 내 집에 대한 집착도 대단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독립에 대한 갈망까지 싹트게 되는데.. 살만하다 싶으니 가족들과 좀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6개월 사이에 두가지 큰 사고를 치게 된다. 하나는 집에서 독립해서 월세방을 얻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들이 살 집을 덜컥 샀다는 것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두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했고.. 무엇보다 그놈의 '저질러 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경솔한 결정에 대한 댓가는 엄청났다. 무리해서 산 집의 대출금 납부일은 매달 다가오는데, 월세 내는 날도 매달 다가오는데.. 날짜 가는 것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상황이 그러다보니 수중에 현금은 씨가 마르고, 그럼에도 생활은 해야하니 아주 소소한 것까지 카드로 결제하고, 덕분에 카드대금 역시 나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당시 사회적으로 한참 문제가 되었던 '하우스푸어'가 딱 나였다. 남들이 보면 입 떡 벌리며 부러워하는 집을 등에 이고 여기저기 치어서 살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집안문제로 인해 친구와 함께 살던 월세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출퇴근 시간이 하루에 4-5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돈도 잠도 부족해서 여유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 2년을 살다가, 도저히 더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집을 팔았다. 그것도 손해를 보고.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고, 동생이 결혼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주택담보대출이 있던 자리엔 신용대출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몇일 전, 더이상은 이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내 총 부채를 정리해봤다. 대출금부터 신용카드 잔여할부금까지 찬찬히 따져보았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부채규모가 내가 어림짐작했던 것보다는 작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적은 금액은 아니기에, 앞으로는 매우 타이트하게 돈관리를 하기로 했다.

자, 이제 서설은 끝났다. 다음에는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이야기해보겠다.